더한옥헤리티지의 신동민 총괄 셰프는 풍경과 느낌, 향과 계절로 오래 기억되는 ‘영월의 맛’을 만들고 있다.
서울을 벗어나 영월로 향할수록 산의 능선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한다. 강은 산자락을 따라 몸을 틀고, 겹겹의 능선은 멀어질수록 먹빛으로 변한다. 비라도 한 차례 지나간 아침이면 낮게 내려온 구름이 산허리에 걸린다. 그 풍경 속으로 검은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더한옥헤리티지는 한옥이라는 오래된 건축적 유산을 지금의 삶과 여행에 맞게 다시 만들어낸 프로젝트다. 영월의 강과 산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땅에서 자연을 한옥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곳은 전통을 오늘의 사람이 실제로 머물고 살아볼 수 있는 유산으로 만들어낸다.
영월을 품은 이 공간에 머물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을 나누며 ‘한국적인 시간’을 실제로 살아보면 왕이 누렸을 법한 여백과 느린 시간이 삶에 잠시 스며든다. 이곳의 목재와 기와만큼이나, 음식은 부수적인 호텔 서비스가 아니라 그 경험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건축적 요소다. 영월의 산과 밭에서 온 재료가 상 위에 오르고, 장과 나물과 밥이 정성스레 차려진다. 더한옥헤리티지 신동민 총괄셰프를 만나, 이곳이 만들어가는 한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월 더한옥헤리티지 전경
간결함으로써 선명해지다
신동민 셰프는 음식에서 재료, 시간, 그리고 장소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더덕을 쓴다면 더덕의 향과 식감이 먼저 느껴져야 하고, 좋은 나물이라면 양념을 최소화해 조금 심심하더라도 나물 자체의 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잣 소스를 만들 때도 맑게 뽑은 아롱사태 육수와 잣, 구운 소금, 단 세 가지 재료만 쓴다. 영월의 포도를 사용하고 싶으면 유통업체에 전화하기보다 농가와 재래시장부터 찾아간다. 농부와 긴밀히 지내며 그 시기에 가장 좋은 재료에 대한 조언도 듣고, 메뉴에 반영한다. 신동민 셰프에게 영월의 요리를 한다는 것은 언제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직접 맛보고, 그 이유를 이해한 뒤 비로소 한 접시로 옮기는 일이다.
지금 그가 이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곳은 강원도 영월의 더한옥헤리티지다. 몬토의 런치와 디너, 나무의 조식과 점심, 독채의 프라이빗 다이닝과 주안상, 풀사이드 메뉴까지 이곳에서 경험하는 음식 전체를 총괄한다. 한식 정찬부터 밥과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아침상, 술과 함께하는 주안상, 후라이드 치킨과 불고기 김밥 같은 오늘의 K-food까지 형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영월까지 왔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가.”
강원도의 옥수수 밭을 찾은 신동민 셰프
일본 요리에서 시작해 영월에서 다시 배우는 한식
신동민 셰프의 커리어는 일본 요리에서 시작됐다. 약 8년간 일본 요리를 했고, 일본에서 직접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쿄에서도 약 1년 6개월을 보냈다. 당시 헤드 셰프와 함께 쉬는 날마다 농장에 가며, 직접 좋은 재료를 구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 AMAN의 그룹 총괄셰프로 각 호텔을 다니며 총괄셰프들을 교육했던 케이지 마토바(Keiji Matoba) 셰프를 만나 요리에 대한 지평도 넓혔다. 당시 그는 정해진 레시피를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좋은 요리라고 생각했지만, 마토바 셰프는 오늘 만든 음식을 손님에게 내고도 다음 날 다시 맛을 보며 레시피를 바꾸고, 다시 만들고, 또 수정했다. “완성됐다고 생각한 요리를 다음 날 다시 고친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죠. 요리는 정답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 더 나은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이 배움은 지금도 이어져, 그는 후배들에게도 레시피를 외우는 것보다 직접 먹어보고 차이를 느낀 뒤 스스로 판단하는 감각을 익히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SM엔터테인먼트 외식사업부에 오픈 초기부터 합류했다. 대리로 입사해 선배 셰프들과 일하며 여러 프로젝트와 현장을 경험했고, 입사 약 5년차에 총괄셰프를 맡아 다시 5년 정도 일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외식업을 경험하며 이 과정에서 한식을 접하는 기회도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깊어졌다.
더한옥헤리티지 내 메인 다이닝 공간인 몬토
머무는 동안 만나는 한식의 여러 표정
더한옥헤리티지에 합류할 때 신동민 셰프를 움직인 것은 ‘영월’이었다. 서울이 아닌 영월에서 한옥과 자연, 지역 식재료와 한국의 식문화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당시 그 역시 한식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던 시기였다. 지금까지 쌓아온 조리 경험을 가지고 한식을 다시 배우면서, 그것을 영월과 한옥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무의 12첩 반상 형태의 조식 (Photo: Julia Lee)
그는 총괄셰프로 한식 다이닝인 몬토(Monto)와 함께 나무(Namu)의 조식과 점심, 독채에서의 프라이빗 다이닝과 주안상, 풀사이드까지 메뉴 개발과 조리팀 운영을 포함한 F&B 전반을 디렉팅한다. 특히 해외 고객은 3박 이상 머무는 경우도 많기에, 장소와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한국의 식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 몬토는 신동민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조리 테크닉을 가장 자유롭게 펼치는 곳이다. 한식을 기반으로 재료와 조리법을 고민해 보다 정제된 코스로 풀어낸다. 한편 나무는 보다 일상적인 한국의 식문화를 보여준다. 아침에는 밥과 국, 김치에 열두 가지 반찬을 더한 12첩 반상을 낸다. “풍성하고 정성스럽게 차려낸 한국의 아침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셰프의 의도대로, 여러 식재료와 맛을 담아낸다. 동시에 점심에는 보다 명확하게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주제로 요리를 낸다. 영월 황잣과 백태로 잣콩국수를 만들고, 송어는 물회로 만드는 것처럼 편한 메뉴에도 지역적인 특성을 담아낸다.
한국 다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누각 티하우스
문어, 육포 등으로 구성된 주안상
별재의 주안상은 또 다르다. 신동민 셰프는 기다림과 정성도 한국의 식문화라는 생각으로 육포와 새우포를 직접 말리고, 말린 감처럼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음식을 중심으로 내며 술과 음식, 자연, 사람 사이의 대화가 함께하도록 구성했다. 풀사이드 메뉴는 보다 현대적이고 캐주얼하다. 후라이드 치킨, 불고기 김밥, 한우 버거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음식을 현대적인 K-food로 풀어낸다. 이처럼 공간 내에 한국 식문화의 여러 얼굴이 다채롭게 혼재한다.
한옥 창호에서 영감을 얻은 몬토의 전채 9종
영월의 나물을 구절판으로, 민어 한 마리를 만두국으로
몬토에서 신동민 셰프가 선보이는 요리 중, ‘전채 9종’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메뉴 기획의 시작은 더한옥헤리티지의 건축과 시각적 이미지였다. 한옥 창호와 호텔 로고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전용 도자기를 만들고, 그 안에 아홉 가지 제철 음식을 담았다. 완성까지 도예가 김선미 작가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닫혀 있던 뚜껑을 열었을 때 아홉 가지 음식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순간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음식뿐 아니라 기물 자체에도 애착이 크다.
몬토의 영월나물 구절판
신 셰프가 아끼는 메뉴로 ‘영월나물 구절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영월에 온 뒤 다양한 나물을 접하면서 이 지역의 나물이 가진 향과 맛에 놀랐다. 좋은 나물을 내는 방법으로 구절판이라는 형식을 택해 여덟 가지 나물을 각각 준비하고 그 위에 대게알이나 성게처럼 감칠맛을 더할 수 있는 해산물을 조금씩 올려 서로 다른 맛의 조합을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여름 보양 메뉴로 선보인 민어 만두국
여름에는 ‘민어 만두국’을 선보였다. 만두피부터 직접 빚는데 밀가루 반죽에 칡전분을 조금 넣어 적당한 쫄깃함을 만든다. 만두소에는 민어와 돼지고기, 고사리가 중심이 된다. 민어는 3일간 건식 숙성한다. 살은 만두소에 사용하고, 머리와 뼈, 자투리 살까지 버리지 않고 육수로 연결한다. 이때 생선 뼈 육수 특유의 비린 향은 최대한 줄이면서 깊은 맛을 끌어냈다. 민어의 다양한 부위가 모두 사용되는 메뉴다.
“항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인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서울에서 잘 만들었거나 반응이 좋았다고 해서 같은 메뉴를 영월로 그대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영월이라는 장소, 지역에서 나는 재료, 한옥, 계절의 변화와 손님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음식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구성합니다.”
몬토에서 설명 중인 신동민 셰프 (Photo: Julia Lee)
요리의 출발은 좋은 재료
신동민 셰프는 먼저 지금 계절에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를 보고, 최대한 영월과 강원도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하지만 지역성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재료를 억지로 영월 안에서 해결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원칙은 산지가 아니라 맛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먹어보지 않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품종, 같은 산지라도 맛이 늘 달라지기에 자신이 직접 먹고 ‘이 재료를 손님에게 내고 싶다’고 판단해야 메뉴에 올린다.
영월에 와서 처음 만난 대표적인 재료가 어수리 나물이다. 이 밖에도 다슬기, 산나물, 송어, 옥수수, 감자, 더덕, 버섯을 계절에 따라 사용한다. 봄에는 산나물의 향과 맛을 최대한 살리고, 여름에는 옥수수와 가지, 오이를 쓴다. 가능한 경우 영월 농가에서 직접 수급한다. 가을과 겨울에는 더덕과 버섯처럼 향이 강하고 맛이 깊은 재료를 찾는다.
식재료를 찾는 일은 사람을 찾는 일과도 연결된다. 포도가 필요하면 유통업체보다 농가와 재래시장을 먼저 찾는다. 호텔 인근 농가에서 우연히 맛본 씨 없는 포도의 당도가 좋아 바로 거래를 제안했을 때도 생산자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포도는 시기마다 가장 맛있는 품종이 다르기에 한 품종을 고정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보름 간격으로 맛있는 품종으로 바꾸어 가며 사용했다. 이처럼 생산자는 물건을 납품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시기에 어떤 재료가 가장 좋은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 이야기를 존중하며 배우는 과정에서 요리가 시작된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다. 서울에 비해 물류 유통이 활발하지 않으니 신선한 해산물을 주문하고도 호텔까지 배송이 되지 않아 셰프가 직접 영월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받아오는 경우처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신 셰프는 이를 통해 요리의 근원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농가와 생산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과 노하우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의 형태보다, 그렇게 먹는 이유
신동민 셰프는 전통과 현대를 서로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통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그것을 지금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식 기관에서 한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가 영월에 온 뒤 장과 김치, 장아찌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한식에는 주문을 받고 조리해 바로 완성되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과 김치처럼 시간이 계속 맛을 변화시키는 음식이 있다. 그래서 신동민 셰프는 전통적인 제조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큼 왜 이 음식에 시간이 필요했는지, 기다림과 정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맛으로 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둔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본질도 조금씩 명확해졌다. 신 셰프는 한식의 핵심이 ‘재료와 시간, 그리고 함께 먹는 문화’라고 말한다. 한식에는 밥과 국, 여러 반찬을 한 상에 놓고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이 많고, 장과 김치는 시간과 정성이 맛을 결정한다. 따라서 좋은 한식은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같은 것으로 설명되기보다는 그 안에 사용된 재료, 그것이 만들어진 지역과 계절, 음식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까지 느껴지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더한옥헤리티지의 음식을 함께 이끌어가는 팀원들
‘좋았던 기억’을 만드는 음식
신동민 셰프가 영월에 온 지 이제 1년여의 시간, 그는 아직 더한옥헤리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앞으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완성된 형태의 ‘몬토’를 규정하는 것보다, 영월의 농가와 생산자를 더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신 셰프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영월 식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영월의 자연과 계절, 한국의 식문화, 더한옥헤리티지라는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면 성립하지 않는 미식 경험인 셈이다. 시간이 충분히 쌓인 뒤에는 사람들이 “영월에 가면 더한옥헤리티지의 음식은 꼭 경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더한옥헤리티지 신동민 총괄셰프 (Photo: Julia Lee)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작 셰프 자신의 이름은 음식보다 앞에 나오지 않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제 요리를 떠올렸을 때, 식재료가 먼저 생각났으면 해요. 정말 더덕 향이 좋았던 더덕 요리가 기억나는 식으로, 그 날의 향과 기억이 남을 수 있는 한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음식과 함께 바라본 한옥과 산, 계절의 풍경, 함께했던 사람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까지 좋은 기억이 되는 시간을 위해 신동민 셰프는 오늘도 ‘영월의 맛’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