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함과 치열함 사이, 정호영 셰프의 ‘카덴’

정호영 셰프는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며 ‘카덴’을 통해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교감이 아닐까. 감각을 건드리고 자극하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을 두드리고 움직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그래서 셰프들도 친근함으로 스며들고 친숙함으로 선택 받으려 TV와 유튜브, 넷플릭스에 등장해 눈도장을 찍고 라포를 쌓으려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셰프를 꼽자면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정호영 셰프다. 요리 대결을 펼치는 <흑백 요리사>의 원조격인 <냉장고를 부탁해>부터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 TV를 켜면 나오는 인물이고, sns를 통해 #일상스타그램을 가장 활발히 보여주는 셀럽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그의 첫 노력이 주방의 장벽을 넘으려는 소통의 출발점이었음을 알면, 다시금 그의 행보에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정호영 셰프의 이자카야 ‘카덴’엔 선도 높은 제주산 식재료를 활용한 안주 겸 메인 디시가 유독 다채롭다.  

일식 셰프가 될 결심, 츠지 카덴

정호영 셰프는 마포구(서울) 토박이로, 서교동 인근에서 한식집을 하시던 어머니 덕택에 요식업계에 자연스레 입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흥미를 끈 건 일식이었다. 

편히 앉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인테리어가 그의 ‘추구미’와 닮았다. 

“한식은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늘 접하던 거라 언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막연히 들었죠. 반면 일식은 카운터에서 손님을 직접 맞이하고 응대하는 모습, 손님과 눈을 마주치며 요리하고 대화하는 셰프의 행동 등이 뭐랄까, 가슴을 흔들었어요. 또 시기별 식재료나 제철 음식의 개념을 뛰어넘어 계절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감각도 멋스럽게 다가왔죠.”

그렇게 그는 국내 일식당과 이자카야에서 약 5년 간 기본기를 다진 후, 본토에서 체계적으로 일식을 배워 보려 다소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감행했다. 그곳이 오사카에 자리한 정호영 셰프의 뿌리, ‘츠지 조리사 전문 학교’였다.

츠지 졸업생으로서의 자부심과 초심을 간직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카덴 입구

“1년차(1학년 과정)엔 스시 계열부터 불을 주로 다루는 로바다야키와 가마야키, 야키토리 등 일식의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배워요. 또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요리 등도 커리큘럼으로 전부 접할 수 있었죠. 2년차엔 계절에 맞는 고급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를 익혔는데, 이때부터 한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저 요리사로서 요리만 한 게 아니었거든요.” 

이어 2학년(심화 코스인 일본요리기술연구소)이 됐을 때부터는 흡사 실전 대비반처럼 실습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A조와 B조로 나눠 하루는 주방을 책임지고, 다음날은 손님 입장에서 맛과 조리, 플레이팅 등 요리를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형태로 수업이 진행됐다. 여기에 홀 서비스도 교대로 맡으며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도 수없이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었다. 

한 치 오차 없이 바삐 돌아가는 오픈 주방의 모습에서 카덴만의 치열함이 잡힌다. 

“실제 레스토랑을 운영해 보는 상황에서 다양한 측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배우고 훈련했었죠. 이렇게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실습한 교실의 이름이 바로 ‘카덴’이었어요. 여기서부터 제 커리어가 시작됐다고 할 만큼 자양분을 얻었죠. 이곳에서 체득한 깨달음이 무궁무진하다 보니, 이게 곧 제 요리이자 제 레스토랑의 중심이 됐어요. 그래서인지 저만의 매장을 오픈하겠다고 맘 먹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이름이 ‘카덴’이었죠. 솔직히 이외에 다른 이름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재일 교포 매장이었던 야끼니쿠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또 남은 시간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만 납품하던 고급 생선 가게에서 무보수로 생선 손질을 맡으며, 일식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경험을 쌓았다. 짧지도, 가볍지도 않은 3년 6개월이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답게 정겨운 미소에서 풍기는 친근함이 그만의 매력이다. 

“이렇게 2008년 한국에 돌아와 인생의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일식의 전설, ‘스시 효’ 안효주 셰프님(일본 유명 요리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도 등장함)이셨죠. 가장 놀랐던 건, 학교를 다니면서 저만의 밑그림으로 구상하던 일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이걸 선생님께서 이미 전부 하고 계셨어요. 매장 운영 방식부터 요리 구성 등 해보고 싶었던 모두를요. 그래서 꼬박 1년 간 성심을 다해 배웠고, 지금도 새해나 명절이 되면 찾아 뵙고 있죠. 자랑 하나만 하자면, 선생님께서 지난 추석엔 직접 과일 선물을 가져다주셨어요. 아마 지금까지도 믿을 만한, 사랑 받을 만한 제자였던 거겠죠? 하하!”

부담 없이 편하게, 푸짐하고 친근하게

2009년 독립의 첫발을 떼면서 도전해 보고 싶었던 장르는 사실 ‘가이세키’였다. 최고의 제철 재료를 감도 높은 안목과 미감으로 다루는 일, 오늘의 파인 다이닝 같은 세계에 몸담고 싶었던 것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다이닝 시장에서 이 꿈을 펼치기엔 시기상조인 듯 보였다. 그래서 동료 몇 명과 이자카야를 먼저 창업했고, 이후 따로 독립해 정호영 셰프만의  ‘카덴’을 차리게 됐다. 

‘이자카야 카덴’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밤은 왁자지껄한 가운데 따스한 낭만이 있다.  

“가이세키에 한동안 매혹됐었던 건 맞지만, 제 마음을 당기고 제 성향에 맞다고 여긴 건 ‘이자카야’였어요. 퇴근 후 식사 겸 술 한잔 할 겸 자유롭게 들리고 싶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식당을 만들고 싶었죠. 손님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 힐링을 주는 그런 곳이요. 문턱 역시 낮춰야 했죠. 월급 받는 직장인들이 한달에 2~3번은 캐주얼하게 회포를 풀 수 있는 그런 술집이자 밥집을 열고 싶었어요.”

이 지점에서부터 정호영 셰프의 철학은 시작된다. 현재 그의 매장인 ‘이자카야 카덴’과 ‘우동 카덴’ 등에서 메뉴판을 살펴보면, 그의 유명세와는 달리 상당히 경제적인 가격에 놀라게 된다. 그리곤 욕심을 부리며 여러 메뉴를 호기롭게 주문하게 된다. 

이후 또 한 차례 감동을 얻기 마련인데, 기대 이상으로 푸짐한 음식양 때문이다. 우동 카덴의 세숫대야 사이즈 우동은 익히 들어 유명하고, 이자카야 메뉴도 안주로 삼기엔 배를 두드릴 정도다. 뭐랄까, 이 순간만큼은 손님들이 허리띠를 풀고 음식으로 온전히 하루를 충전케 하고 싶다는 의지, 아니 정이 전해진다. 

선도와 퀄리티, 양, 가격에 만족도가 올라가는 카덴의 ‘모듬회’

“솔직히 가격에 대해선 재료 단가 하나하나를 철저히 계산하지 않고, 제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기준으로 삼아요. 식재료의 퀄리티와 맛은 기본인 거고, 가격적인 면에선 오히려 손님의 관점에서 접근하죠. ‘이 가격이면 먹고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까?’, ‘내 돈을 주고 사 먹기에 정말 가치가 있을까?’를 중시 여겨요. 식재료가 최상이어도, 음식이 아무리 맛있고 훌륭해도 가격이 높으면 만족도가 최상일 순 없죠.”

그는 지난 17년 간 레스토랑들을 이끌어오면서 사회적, 자연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재료 단가가 끊임없이 변동되더라도 이를 매번 메뉴 가격에 반영하진 않았다. 손님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하고 좋은 재료를 비싸게 파는 건 어찌 보면 쉬운 일이죠. 카덴에선 신선한 양질의 재료를 누구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고 싶었어요. 일례로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금태’를 다룰 땐, 재료 단가와 메뉴 가격이 거의 동일하다 싶을 정도였죠. 지금도 바람이라면, 마진을 줄여서라도 제 맛있는 음식을 한 명에게라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모듬회를 플레이팅하는 그의 손끝에서 섬세함과 치밀함이 느껴진다.  

일식부터 세계 요리를 아우르는 이자카야 스펙트럼

사실 그에게 처음 유명세를 가져다준 건 ‘훌륭한 성품’에서 비롯된 인맥이나 ‘TV 출연’으로 인한 인기 때문이 아니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리 스펙트럼을 보유한 명불허전 최고의 셰프였기 때문이다. 그는 츠지 시절부터 남보다 몇 시간 일찍 등교해 준비하는 연습 벌레를 자처했었고,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던 청년기엔 일본 요리 서적 서너 권을 필수품처럼 지니고 다니며 요리 연구를 생활화한 노력파였다. 

그의 해맑은 미소에서 손님과의 교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지난날이 엿보인다.  

요즘도 일본에 갈 때면 반드시 서점에 들러 식재료나 요리 관련 신간을 구매한다고 하니, 식지 않은 학구열이 매서울 정도다. 심지어 그는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 1, 2에서도 70% 이상 승기를 쥔 셰프이자, <흑백 요리사 2>에서도 4등까지 올라간 셰프가 아니었던가. 이렇듯 매장에서도,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서도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무슨 요리든 빠르고 쉽게 창의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건 그의 지난날 꿈과 열정에서도 기인한다.  

무드 있는 술자리, 유쾌한 저녁 식사 자리도 가능한 이자카야 ‘카덴’

“이자카야는 어떤 식재료든 다룰 수 있고, 규격화된 조리법도 따르지 않아요. 이것저것을 자유자재로 버무릴 수 있죠. 그래서 많은 요리와 조리법에 통달하는 게 중요해요. 제 메뉴 중엔 파스타도 있고, 아쿠아파차(acqua pazza, 이탈리아식 생선찜)나 카르파초(carpaccio)를 내놓을 때도 있죠. 물론 저만의 해석으로요. 할 수 있는 게 버라이어티한 만큼 계속 머리를 써가며 조합해 볼 수 있으니 매번 흥미롭죠. 이자카야의 매력이 딱 이거예요. 탐구할 요리의 세계가 끝도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는 <흑백 요리사> 회차별 미션에서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마치 그의 머릿속에 매번 신박한 아이디어나 레시피 조합이 순간순간 생성되는 듯했다. 일식 셰프지만 일식만을 파고든 게 아니라, 모든 장르를 섭렵한 그였기 때문이다. 

카덴 내 주방팀 모두 요리 퀄리티에서만큼은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저희 카덴의 대표 메뉴를 하나만 고를 순 없어요. 제가 욕심이 많은 건지, 이것저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니까요. 메뉴판도 날마다 새로 뽑죠. 손님들 입장에서 ‘오, 이건 뭐지? 또 한 번 먹어 볼까?’란 신선함을 주려는 의도도 있고요. 그래도 제일 첫 번째 시그니처를 꼽자면 ‘모듬회’죠. 그때그때 제철 생선으로 싯가가 아닌 고정 가격으로 메뉴를 내고 있어요. 다들 선도에 한 번, 푸짐함에 또 한 번 놀라며 엄지 척을 해 주시곤 술 한두 병으론 모자라다고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그의 요리 중 헤어 나올 수 없이 중독성 있는 메뉴도 있다. 바로 ‘제주 은갈치 튀김’이다. 살이 단단하고 맛이 고소해 뭘 해도 감칠맛 최고봉인 제주산 은갈치를 뼈부터 잔가시 하나까지 손수 깨끗이 바르고, 속살은 도톰하게 포를 떠 부위별로 튀겨내는데, 섬세하고 정성어린 손길이 파인 다이닝 못지않다. 

한 번 맛보면, 겉바속촉의 식감 대비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제주 은갈치 튀김’ 

특히 플레이팅에도 카덴만의 감각이 엿보이는데, 통갈치 전체를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려 아티스틱하게 재조합해냈다. 여기서 한층 더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건 따로 발라 튀긴 갈치 뼈. 포실한 갈치 속살과 대비되는 스낵 같은 식감, 고소한 풍미가 맥주를 부른다. 

이어 ‘전복과 무 스테이크’도 그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시그니처 디시 중 하나다. 공과 시간이 많이 드는 조리법이 핵심으로, 약 2시간 동안 부드럽게 찐 전복과 따로 먹기 좋게 익힌 무를 다시 육수에 함께 데운 다음 선도 높은 전복의 내장을 풀어 풍미를 올리고 전복죽을 끓이듯 밥알을 넣어 농도를 높였다. 이렇게 완성된 디시는 흡사 스튜나 수프 느낌도 나는데 무에선 전복의 맛이 느껴지고 전복에선 무의 맛이 느껴져 최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꾸덕한 전복 내장의 깊은 여운이 스며 있는 ‘전복과 무 스테이크’ 

그만의 특화된 조리법의 집약체, ‘옥돔구이’도 간과할 수 없다. 익히 알다시피 그는 제주에도 ‘카덴’ 분점을 낸지 5년차. 원래부터도 최상급 제주산 고등어, 금태, 옥돔, 전복 등을 잘 사용했었지만, 최근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제주 특유의 식재료에 맞춘 디시를 내놓기도 했었다. 

“처가가 제주에 있다 보니 마포구 다음으로 친숙한 곳이 제주였죠. 그래서 제주뿐 아니라 서울 매장에서도 우동 면발 반죽에 삼다수를 쓰기도 하고, 제주 향토 요리인 옥돔 무국에서 착안해 옥돔과 무를 활용한 국물 요리를 내기도 했었어요. 게우젓(전복 내장 젓갈)과 전복을 비벼 먹을 수 있게 덮밥을 해 보기도 했었고요. 그중에서도 제주산 옥돔은 카덴의 단골 식재료였죠.”

정교하게 손질된 제주산 옥돔 비늘에서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전해지는 ‘옥돔 구이’

튀김의 고수로도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옥돔 구이’는 한 올, 한 올 곱게 말린 비늘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파편감이 보일 만큼 비주얼부터 식욕을 자극한다. 이 디시는 제주산 옥돔을 고온에 한 번 튀긴 다음 그릴에 굽고 다시 숯불에 구워가면서 차콜 향이 베이도록 한 것으로, 비늘부터 껍질은 바삭하고 살은 촉촉해 옥돔의 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려냈다. 

이렇듯 그는 식재료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조리법을 접목하고 또 유연하게 풀어내 카덴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장르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되, 손님에게 가장 맛있는 한 접시를 올리는 것. 그래서인지 카덴의 요리엔, 정호영 셰프가 지나온 시간과 삶의 방식, 요리에 대한 태도가 겹겹이 스며 있다.

절실함에 시작한 방송, 인기를 얻어도 지킨 초심

그 역시 힘든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매출의 기복을 겪던 시기도 있었고, 한 명에게라도 더 자신의 요리를 간절히 맛보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바로 이때 박찬일 셰프를 만났고, 이연복 셰프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이미 박찬일 셰프님은 다이닝 업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분이셨는데, 제가 용기를 내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했었죠. 그리곤 안면을 트게 됐는데, 당시 서교동에 있었던 저희 매장에 자주 들러 주시고 칭찬이나 조언도 많이 해 주셨어요. 정말 소중한 은인이시죠. 또 주변 지인들에게도 카덴을 추천해 주셔서,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절 알게 됐고, 업계 관계자 분들도 자연스럽게 저희 매장을 찾게 됐어요. 게다가 이연복 셰프님도 소개를 해 주셨죠.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때 처음으로 요식업계 안에서 연결되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한 번 가면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카덴’의 푸근하고 온기 어린 분위기 

2015년 그는 이를 계기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하며 TV 출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가장 가까운 요리사가 됐고, 스타 셰프의 반열에도 올라섰다. 

“방송에 적응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린 것 같아요. 처음엔 막대한 부담감이 들었고 많이 떨었죠. 항상 긴장하고 모든 게 어색했어요. 그런데 이연복 셰프님이 워낙 잘 끌어 주시기도 했고, 15분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묘하게 도전정신이나 승부욕도 생기고, 보람과 재미도 얻게 되더라고요.”

이후 그는 TV 예능에 단골로 등장하며 전 연령층에 걸쳐 인지도를 쌓았다. 매장을 찾는 손님도 눈에 띄게 늘었고, 손님층 또한 남녀노소를 넘어 국적까지 다양해졌다. 이렇게 ‘이자카야 카덴’과 ‘우동 카덴’은 어느새 웨이팅 맛집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됐다.

그의 요리는 물론 최고의 인기조차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물이란 걸 알면, 괜시리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방송을 통해 제 인지도가 올라가고, 그만큼 많은 손님들이 카덴을 찾아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제가 항상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연예인이 음식점을 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란 점이에요. 방송은 손님을 끌어오는 수단이 될 순 있지만, 그 이후를 결정짓는 건 결국 음식이거든요. 한 번이라도 맛이 기대에 못 미치면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어요. 손님 입장에선 ‘TV 나오더니 음식엔 소홀해졌네’, ‘요리 잘하는 줄 알았더니 방송 덕이었네’란 반응이 나올 수 있죠. 그래서 더 철저히 관리하고 긴장을 놓치 않습니다. 저는 결국 셰프니까요.”

그래서인지 쉴 틈 없이 바쁜 스케줄을 보내는 중에도 좀처럼 매장을 비우는 법이 없다. 서울 매장이 쉬는 이틀 동안엔 제주 매장을 지키며 자리를 채우고, 어디서든 카덴의 퀄리티를 지키려 분투한다. 

“한결같이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요.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죠. 바쁘고 힘들면 지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루에 500그릇이 넘는 우동을 만든다 한들 각 손님에겐 단 한 그릇의 우동이거든요. 499개를 잘 만들고 1개를 잘못하면 그건 손님에게 실례죠. 카덴을 찾는 누구에게든 정성을 다한 한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스타 요리사에서 다시 셰프 정호영으로 

그는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리하길 좋아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일도 즐긴다. 오죽하면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 1 제작이 잠정 중단됐을 때, 유튜브 ‘정호영의 오늘도 요리’를 시작했을까. 한편으로는 방송인, 예능인으로 비춰지는 시선에 대해 남 모를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흑백 요리사 2>에 출연하게 됐죠. 방송인으로 불리는 게 나쁘진 않은데, 예능 캐릭터가 너무 부각되는 것 같아 제 ‘본캐’를 찾고 싶었습니다. ‘TOP 8’ 안엔 들고 싶었는데 4등을 했으니 꽤 괜찮죠. 그래도 1등을 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 같아,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확실히 셰프로서의 제 입지도 구축하게 됐고요. 이젠 ‘예능캐’로만 보진 않죠. 하하하!” 

변함없이 카덴의 자리를 사수하는 정호영 셰프의 모습에서 타고난 진정성이 와 닿는다. 

정호영 셰프는 <흑백 요리사>에서 요리에 진심인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선보이고 싶었다 했다. 그리고 진검승부를 통해 오래 쌓아온 내공과 노하우, 장르를 넘나드는 감각과 순발력 등을 더 또렷이 드러낼 수 있었다. 

“제가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꾸준히 트레이닝을 했었잖아요. 서바이벌도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시즌 1의 경험치가 있었던 최강록 셰프가 우승한 건 아닐까요? 겪어 봤으니까요, 하하! 돌이켜보면 매장 입구에 ‘츠지’의 졸업장과 간판을 달았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저도 매너리즘에 빠질 만한 연차인데, 오히려 요리가 더 좋아졌죠. 그리고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요리는 파면 팔수록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는 오너 셰프로서의 처음을 시작한 ‘카덴’에서 여전히 열정과 성실을 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 그에게 또 하나의 수확이 있었다면 샘킴 셰프와의 관계가 아닐까. 팀전부터 1:1 맞대결까지 승부의 끝을 경험했지만, 이 과정 가운데 우정은 한층 더 깊어지게 됐다.  

“방송 출연을 오래 같이 했지만 막역한 사이까진 아니었죠. 그런데 이젠 정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그리고 샘킴 셰프와 꼭 함께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면’과 관련된 팝업이에요. 제한된 인원만 대상으로 소규모지만 의미 있게 해 보고 싶어요.”

2년 연속 이어진 <흑백 요리사> 열풍과 함께 셰프를 꿈꾸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렇다면 그는 ‘제2의 정호영 셰프’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흑백으로 비유하자면 저는 백수저로 출연했지만, 처음부터 백수저인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단 거예요. 저도 첫 월급을 50만 원으로 시작해 쉬지 않고 달려와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라 인내와 시간, 노력밖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요리엔 요행이 없죠. 그래야 성장할 수 있고, 그렇게만 하면 누구나 백수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첫 마음 그대로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감행하며 그만의 요리 세계를 펼쳐 가고 있다.

‘요리에 죽고 요리에 사는 셰프’란 말이 과하지 않을 만큼, 그는 요리만을 바라보며 걸어왔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친근감, 사람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태도, 이 모든 게 지금의 카덴을 이룬 중심축이 된 듯하다. 요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거나 수련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요리를 전하려 ‘방송’이란 낯선 무대로 기꺼이 들어간 일. 그리고 <흑백 요리사>에서 실력을 다시 증명해낸 일. 그는 이토록 지난한 시간 끝에 가장 유쾌한 셰프이자, 가장 치열한 셰프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카덴’의 이름에선 요리 초년생 시절의 솜털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잡힌다. 대중에게 친숙한 표정과 행동, 입담으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지만, 결국 그를 움직인 건 언제나 요리였고, 사람들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대중을 울고 또 웃게 만들며, 정호영 셰프의 요리를 오래 기억하고 찾게 하는 것 같다. 

단락

Writer 전채련(Chaeryeon June)
Editor 전채련(Chaeryeon June)
Photographer 오충근(Choong-keun Oh)_ studio. choo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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